자살 시도했던 사병이 자살하면 국가배상책임
서울중앙지법, 국가와 망인에 각 50% 책임 인정
2007년 01월 26일 (금) 16:56:53 신종철 기자 sky@lawissue.co.kr
부대 선임병들의 모욕적인 언어폭력과 집단따돌림 등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총기사고를 낸 사병이 휴가를 나온 지 하루만에 자살한 경우 국가에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제24민사부(재판장 김경배 부장판사)는 선임병들의 집단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A씨(당시 23세)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06가합60583)에서 지난 17일 “국가는 유족들에게 1억 2,6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A씨는 2002년 2월 육군에 입대해 포병으로 근무하다가 몇 달 뒤 다른 부대로 전입 갔다.
A씨는 전입신병 면담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전입 후 말을 별로 하지 않았고, 선임병들이 장난을 걸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해 종종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는 등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행동을 보여 선임병들은 물론 전입 동기생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이에 A씨는 선임병들로부터 집단따돌림을 당해오던 중 2002년 5월 18일 경계근무를 서다가 공포탄이 장전된 소총의 총구를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기며 자살을 기도해 입천장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총기사고 직후 A씨를 치료한 군의관이 A씨에게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를 물어보자 A씨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군의관은 A씨가 정신적으로 다른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자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조치하지는 않았다.
소속 부대장은 총기사고를 대대장에게 보고했으나, 대대장은 상급부대에 보고하면 지휘관으로서 질책을 받을 것을 우려해 총기사고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대대장은 부대장에게 총기사고를 낸 A씨를 징계 조치할 것을 지시했고, 이에 부대장은 A씨를 지시불이행과 경계근무소홀 등의 죄명으로 입창의뢰서를 허위로 작성해 7일간 영창에 가두었다.
소속 부대원들은 A씨가 군대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총기사고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A씨를 이전보다 심하게 따돌렸다.
이후 A씨에게는 보직조차 주어지지 않자 이상한 언행을 하기 시작했고, 이에 행정보급관이 가족들을 부대로 오라고 한 다음 A씨에게 7일간 휴가를 줬다.
하지만 A씨는 집에 와서도 다른 부대원들이 자신을 조롱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거실을 서성거리며 “내게 임무를 달라”는 잠꼬대를 하는 등 매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A씨는 휴가 나온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친 후 자신의 아파트 19층에서 창문을 통해 뛰어내려 자살하고 말았다.
이에 가족들은 국가유공자 유족등록신청을 했으나 서울남부보훈지청은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에 해당해 순직 군경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한편 유족들은 “선임병들의 집단따돌림 등으로 자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2억 4,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망인은 입대 전에는 우울증 증상이 없었으나 부대 상급자들의 모욕적이고 위압적인 질책과 언어폭력 등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총기사고를 냈는데, 지휘관들은 망인이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조치하지 않은 채 오히려 총기사고를 은폐하고자 허위공문서를 작성해 영창에 가둔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부대지휘관들은 망인을 가족들에게 인계할 당시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어서 휴가를 보낼 경우 사고 낼 가능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족들에게 정신병 증상에 대해 설명이나 보호방안을 강구하지 않은 채 인계해 결국 다음날 사망하게 된 점 등을 보면 상급자들의 가혹행위와 소속지휘관들의 직무태만 행위와 자살은 인과관계가 있다”며 “따라서 국가는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상급자들의 가혹행위는 언어폭력인데 내용이나 정도가 신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것이 아니었고, 평소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도 부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됐던 점,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않은 점, 유족들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망인에 대해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을 참작할 때 피고의 책임을 50%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